[뉴스인사이트] 이충진 기자 = 여름 극장가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볼 만한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7일 개봉한 디즈니•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루카>이다. 바다괴물인 소년 루카와 친구들의 신나는 모험과 우정, 성장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 어른과 아이가 함께 순수하고 행복한 유년기를 추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게릴라성 소나기와 한 여름 더위가 오가던 오후 초등학생 조카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 냉기가 만족스러운 극장 안에는 좌석이 반 이상 차있었고 분위기는 양분되어있었다. '바다괴물 소년의 모험담'을 기다리는 어린 관객들은 들떠있었고 동석한 어른들은 대부분 별 기대 없이 너무 유치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후반부에 마음을 울리는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주는 꽤 훌륭한 영화였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 마을과 바닷속을 오가는 바다괴물 친구들을 지켜보며 랜선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동심과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따뜻하고 흐뭇해지는 95분이었다.
수줍고 소심하지만 호기심 많은 13살 소년 루카는 바다 밖 세상이 두렵고도 궁금하다. 위험한 '육지괴물'이 사는 세상에 호기심을 갖는 아들이 걱정스러운 부모는 심해에 사는 삼촌에게 보내려 한다. 호기심에 못 이겨 물 밖에 나간 루카는 자유로운 영혼 알베르토와 만나 육지를 경험하고 스쿠터 여행을 꿈꾸며 특별한 모험을 하게 된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복잡한 갈등 구조가 없는 <루카>는 픽사의 전작들에 비하면 심심해 보일 정도로 서정적인 분위기의 성장 스토리다. 그럼에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관객이 누구이든 순수한 루카와 친구들이 겪는 고군분투에 동행하고 공감하게 되는 성장통과 화해가 누구나 반드시 겪는 주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뭍에선 인간의 모습인 루카와 알베르토는 물에 닿기만 해도 '바다괴물'로 변한다. 컵 안의 물만으로도 정체가 들통날 위험을 무릅쓰고 둘은 '바다괴물'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육지괴물'이 있는 해변 마을로 향한다. 여행을 떠나려면 스쿠터가 필요해서다.
인간 소녀 줄리아와 친구가 되고 함께 철인 3종 경기(수영, 사이클, 파스타 먹기)에 도전한다. 경기 준비를 하면서 줄리아 아빠의 어업을 돕고 정체가 들킬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세 친구들은 함께 성장해 나간다. 시합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결국 팀이 해체된다. 이 과정에서 소년들이 마주치는 '편견'과 '다름'에서 비롯된 '증오', 이를 극복해나가는 '인정'과 '화해'의 이야기들이 푸른 지중해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동화처럼 단순한 줄거리에 가벼운 내용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영화 속 곳곳엔 은유와 상징이 배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시아 증오'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빗대었을 때 '바다괴물'과 '육지괴물'이라는 잘못된 '편견'으로 시작된 증오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순수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실마리를 얻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루카가 상처받은 알베르토와 화해하고 부모에게 인정받고 진짜 꿈을 찾는 과정은 직접 영화관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현실은 비록 마스크를 쓰고 불 꺼진 극장 안이지만 이탈리아 해변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는 주인공 루카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 최고의 여름을 함께 한 친구들이 떠오를 것이다. 용기가 필요할 때 루카처럼 '실렌시오 브루노'를 외쳐보자.
참고로 '실렌시오 브루노'는 겁먹고 주저하는 루카에게 용기를 주려고 알베르토가 가르친 말이다. 브루노는 내면의 겁쟁이고, '실렌치오(Silenzio)'는 '조용해'라는 뜻이다.
<루카>는 "어린 시절 리비에라의 바닷가 마을에서 멋진 여름을 보내며 정말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라고 밝힌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담긴 진정성 있는 성장 스토리이다. 감독이 직접 보고 느낀 풍경과 감정, 그리고 성인이 된 후 다른 곳에서 살며 느꼈던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지며 <루카> 속 주인공들이 인생 최고의 여름을 보내는 배경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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